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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웠소. 진심이오.”

 

 아주 고요한 새벽. 그녀는 눈을 감고 있는 그의 곁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그대의 푸른 눈동자를 보고싶지만 참겠소.”

 

 부드럽게 그의 얼굴 곡선을 따라 손을 놀렸지만, 접촉은 없었다. 

 

“잘 지내시오. 덕분에 그대의 세상에서 잘 지내다 가오. 당신의 세상은 아주 눈부셨소. 떠나고 싶지 않을 만큼. 하지만… ”

 

 이제 나는 인간세상으로 나서야 될 때 같소. 그 말은 꾹 마음속에 담고 그녀는 아주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목검이 아닌 묵직한 진검을 들고, 아주 조심스럽게 오두막을 빠져나갔다. 빛이라고는 달빛과 별빛 밖에 없는 깊은 산속을 빠르게 걸어, 그녀는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의 모습. 그동안 많은 것들이 변하였다. 불에 타 없어진 가구가 꽤 되었고, 새벽 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끙끙 앓는 소리와 아기의 울음소리같은 것들이 들려왔다. 

 

 그녀는 터덜터덜 걸음을 걸어 주막에 도착했다. 주막 또한 피해를 본 것인지, 마당이 황폐했다. 그녀가 씁쓸한 표정으로 인기척을 내자, 방문이 열리고 주모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 손님이시오?”

“그렇소만.”

“안타깝지만 지금은 받을 수 없소. 보시다시피 여건이 되질 않소.”

“그저 쪼그려 쉴 수 있는 공간이라도 주시겠나.”

 

 주모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남장을 했으니 아무리 양반댁의 애기씨라도 못 알아볼 것이 분명했다. 도깨비에게 잡혀간 것도 그러하고. 사실은 그 사내와 함께했지만. 그녀는 무거운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 정처없이 떠도는 떠돌이일세.”

“수도에서 오셨는가?”

“... 수도에서.”

 

‘나는 수도에서 왔소.’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했지만,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냈다. 

 

“... 수도에서 온 것은 아니오. 옆 마을에서 왔소. 그쪽도 폐허가 되어서.”

“... 이민족만 아니면 되니, 이리 오시오. 어찌 비집고 들어가면 자리가 있을 것이니.”

 

 그녀는 주모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한기가 가득한 창고에서 쭈그려 앉은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내일이면 이민족이든, 도깨비든 누구든 찾아 나서야 하니 마음이 참 고단했다. 고요하니 한가지 생각 밖엔 나지 않았다. 

 

“그대의 세상에서 나오자마자 이리 험난하오.”

 

 구름에 가려 달빛이 잘 보이지 않았다.

 

“꿈을 꾼 것이라 생각하겠소. 아마 평생을 잊지 못하겠지.”

  •  

 

 그날 새벽, 동이 트기 전. 요란한 소리가 가득 들려왔다. 비몽사몽간에 그녀는 눈을 떴다. 창고의 틈 사이로 붉은 불빛이 일렁였다. 

 

“사, 사, 살려주시오!”

“으아악!”

“꺄아악!”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혼미백산하여 밖으로 나오니, 말을 탄 이민족들이 무차별적으로 도망치는 사람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이고는 빈 집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옷에 불이 붙은 사람이 집 밖으로 뛰쳐나오고, 와장창 바닥에 뒹구는 모습들을 눈에 담고 있던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검을 빼 들었다. 

 

 하지만 실전은 처음이고, 공격술이 아닌 방어술만 주구장창 배웠던 그녀는 할 수 있는게 없이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이민족의 둔탁한 칼날을 겨우 막아낸 그녀가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두르자, 한 이민족이 부상을 입고 말에서 떨어졌다. 그녀는 숨을 거칠게 몰아 쉬며 거리에 쓰러진 사람들을 도우려 애썼다. 

 

“이리로! 이리로 피신하시오!”

“으아악!”

 

 눈 앞에 피가 촤르르 흩뿌려졌다. 그녀가 손짓하는 곳으로 오려다 뒤에서 칼을 휘두르는 이민족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 이민족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들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크아아아!”

 

 이민족들은 괴 짐승 소리를 내며 사납고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그녀는 마지막 임을 예감했다. 이렇게, 꿈에서 깨자마자. 역시 그의 말이 맞았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누구를 구하지도, 그렇다고 누구를 죽이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검을 고쳐 잡았다. 그래, 당장 이민족들에게 해방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번쯤은 그들과 맞서 싸워야 했다. 두려움에 벌벌 떨며 잡아 먹히기만 기다리는 그런 나약한 마을이 아니라, 내 사람, 내 마을을 지키는 자가 한명이라도 더 늘어나는 곳이라면, 언젠가는.

 

“크아악!”

 

 이민족이 그녀에게 돌진했다. 그녀는 온 팔에 힘을 주고 그동안 연습했던 것들을 떠올렸다. 이민족의 칼이 그녀의 칼에 부딪히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었다. 팔이 부러질 듯한 강도의 접촉이었다. 숨돌릴 틈도 없이 또 한번 그들의 칼이 맞닿았다. 그녀가 잽싸게 몸을 돌려 빠져나가고, 그녀가 있던 자리에 쿵- 하고 이민족의 칼이 바닥을 찧었다.

 

 헉헉, 숨이 가빠왔다. 팔이 욱신거렸다. 재빠른 몸놀림으로 요리조리 이민족의 공격을 피하다 겨우 급소를 찌른 그녀는 손을 벌벌 떨면서 그녀의 몸 위로 쓰러진 이민족을 떨쳐 내었다. 일어나자마자 또 한번 은빛 검이 그녀의 눈가를 스쳤다.

 

“크아아아!”

 

 또 다른 이민족이 그녀에게 덤벼든 것이다. 그녀는 떨어지는 체력으로 겨우 겨우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으윽!”

 

 이민족의 칼날이 그녀의 왼쪽 팔을 스쳤다. 안 그래도 힘이 떨어지는 찰나에 팔 하나를 못쓰게 되니 검을 휘둘러도 휘두르는 것이 아니었다. 챙그랑, 결국 이민족의 칼을 받아내던 그녀의 검이 날라갔다.

 

 마지막인가. 그녀가 체감했다. 마지막. 이민족이 킬킬 웃으며 칼을 높이 빼어 드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것. 장랑. 그대.

 

 이렇게 마지막까지 미련이 남아 그대를 생각하는 것을 보아하니. 언젠가부터 그대가 나의 마음에 살았기 때문인 게야. 내 세상엔 이 국경 마을을 구하는 것 뿐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샌가 그대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게야.

 

 내 세상은 이렇게 무너지지만, 그대의 세상은 온전하길.

 

 그녀가 몸을 움츠리며 그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어떠한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눈을 떠보니, 험악하게 일그러진 이민족의 얼굴이 바로 그녀의 눈앞에 있었다.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것을 느낀 순간, 털썩, 그녀를 죽이려던 이민족이 그녀의 옆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의 등 뒤에서 보인 것은 장랑.

 

“내… 이미 죽은 게야.”

 

 그녀가 중얼거렸다. 장랑은 넘어져 있는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다쳤군.”

“… 죽자마자 그대의 얼굴을 보다니.”

“지혈을 해야할 것 같은데.”

“여기는 극락인가보오.”

 

 멍하게 중얼거리는 그녀를 보며 장랑이 실소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헛소리 하는 것을 보아하니 정신은 있고.”

“… 현실인가? 장랑인가?”

“도깨비오.”

 

 그녀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성한 오른손으로 그를 더듬더듬 만져 대었다.

 

“참으로 그대인가?”

“지금 시간이 없으니, 회포는 나중으로.”

 

 장랑은 한쪽 팔로 그녀를 감싸 안고는 돌진해오는 이민족들을 차례로 물리쳤다. 그리고는 안전한 장소로 그녀를 끌고 갔다.

 

“일단 여기 가만히 있으시오. 내가 찾으러 올 때까지.”

“… 장랑 혼자 어찌.”

“그대의 세상을 구하러 왔지.”

 

 뒤돌아가는 그가 등 뒤에 꽂혀있는 검을 한 자루 더 빼앗아 들었다.

 

  •  

 

 이민족들의 침입은 결국 마을의 승리로 끝이 났다. 침입한 지 몇 시진 되지 않아 그들은 후퇴했고, 동이 트기 전에 전쟁이 끝날 수 있었다. 그리해도 마을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성인 남성들은 길거리에 널린 시체들을 수습했고, 아이들은 울며 부모를 찾아 돌아다녔다. 그녀도 잠잠해지자, 길거리에 나와 그를 찾아 헤메었다. 혹시라도 그가 쓰러져있는 것은 아닌지, 시체 더미를 바라보던 그녀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닐 것이다. 저기는 아니야.

 

 그녀는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사람들이 우글우글하게 모여있는 곳을 발견했다.

 

“저 자가 바로 도깨비여?”

“도깨비는 마을을 부시려 들지, 구하려 들지는 않을 거여.”

“허지만, 저자가 나타나서 이민족들이 혼미백산하여 도망가지 않았는가?”

“그럼 뭐여, 수도에서 왔는가?”

 

 수도, 도깨비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그녀는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또한 두리번 거리며 그녀를 찾는 중인 것 같았고, 그녀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의 품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다친 곳은.”

“내가 물어볼 말이었소.”

 

 그녀가 그의 품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나 때문에 그대의 세상이 깨어졌소. 숨어 지내는 자가, 이렇게 전쟁에 나서면 어찌한단 말이오.”

“깨진 것이 아니오.”

“내 미안해서 이제 그대 얼굴을 어찌 봐야 하오. 나의 세상만 중한 것이 아닌데.”

 

 그가 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날카로운 턱선, 푸른 눈, 노란 머리, 얼마나 보고싶었던 얼굴인가.

 

“자책하지 마시오.”

“그것이 사실이오. 나 때문에…”

“내가 이리 선택했소. 당신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때문에 내가 그대의 세상에 걸어 들어온 것이오. 아, 사실은 뛰어왔지만. ”

“그대의 마음?”

“내가 당신의 도깨비가 된다고 했잖소.”

“… 도깨비.”

“그리고 당신은 도깨비 신부였고, 몇 계절 동안.”

“아.”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드디어 도깨비를 찾은 것을 축하 하오.”

“…”

“자, 이제 어디 죽여보려면 죽여 보시오. 기꺼이 그대가 원하는 대로.”

“… 농이 심하오.”

 

 그녀가 눈물이 차오르는 눈동자로 그를 흘겨보자, 그가 입술 끝을 말아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국경마을에 이민족들이 침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

“… 그대의 허무맹랑한 신분변화로는…”

“수도에 지원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내고 내려 왔소. 그대가 아는 것보다 나는 능력이 있는 남자요.”

“… 무공이 뛰어난 것은 알고 있소.”

“내 군대가 곧 도착할 거요.”

“군대?”

“소개가 늦었소. 당신의 스승이자, 당신의 도깨비이자, 이 나라의 중앙군 사령관이었던 장랑이오.”

 

 여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막은 채 그에게서 두 걸음 정도 뒷걸음쳤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오.”

“… 도망쳤다는 곳이.”

“그렇게 되었소.”

 

 여자의 다리가 후들거리자, 장랑이 얼른 그녀에게 두 걸음 다가와 그녀를 부축했다.

 

“도깨비라?”

“아니 장군이라 하지 않았당가?”

“장군이라고? 자네도 들었는가?”

“아이고 장군님!”

“아니고 사령관님!”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것인지, 그들 주변의 마을 사람들이 장랑의 정체가 밝혀지자 흙 바닥에 절을 하며 소리를 내었다.

 

“마을을 구해 주시러 와 주신거라?”

 

 사람들이 눈물을 훔쳐대었다. 장랑이 여인을 부축하고 걸음을 옮기자, 그들의 앞에 서있던 사람들이 모두 길을 피해주었다.

 

“저분은 누구 지라?”

“얼굴은 애기씨를 꼭 닮았어라.”

“아이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가! 애기씨는 도깨비한테 잡혀간 지가 언젠디.”

“불쌍도 허지. 곱디고운 애기씨가 여종을 위해 희생하실줄은 누가 알았겠어.”

 

 여인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것을 본 장랑이 수근거리는 아주머니 무리에게 다가갔다.

 

“부탁이 있는데.”

“뭐, 뭐든 마, 마, 말씀 하십쇼. 장군 나으리.”

“마을에 전달을 할 것이 있소.”

“예에.”

“그녀의 희생에 감동해 도깨비가 신부를 데리고 마을로 내려왔다고 전하시오. 그리고 더이상 신부는 필요 없다는 말도 덧붙이시고.”

“예에? 예에? 아이고.”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 몇 번이고 말을 더듬다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민망함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아주머니가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장랑이 먼저 그녀를 데리고 걸음을 옮겼다.

 

“아이고 우리 애기씨가 돌아오셨던다!”

 

 뒤로 울려 퍼지는 아주머니의 목소리.

 

“고맙소.”

 

 그리고 도깨비의 품에서 작게 중얼거리는 도깨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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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신부

울프릭 헤레이스|재단사 헤레이스

 국경 근처에는 기이한 소문이 퍼졌다. 

 

“또 도깨비의 짓이라지?”

“도깨비라도 이렇게 잔인할 수는 읎당께.”

“자네의 여식은 혼인을 해서 다행 인줄 알어. 내 여식은 여즉 머리를 올리지 않아 가족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니께.”

“여보쇼. 자네의 여식은 열 하고도 네 살밖에 먹지 않았당가?”

“어디 도깨비가 신부의 나이를 상관하당가?”

“...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여.”

 

 작은 고을의 주막. 두 평민 사내가 한숨을 푹푹 쉬며 사발을 통 채로 들이켰다. 

 

“달아놓은 외상 갚, 오늘은 갚을 수 있소?”

 

 치마를 댕강 올려 입은 주모가 그들의 상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을 탁- 하고 놓으며 말을 잘라내었다. 

 

“어허,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당가? 물의 계절이 지날 때쯤에 내 두배로 갚겠다 했잖어.”

“이 사람이! 저번엔 안식의 계절 끝자락에 갚겠다 하였어!”

“내 지금 여식의 생사가 달려있는데 이런 게 뭐가 다 중허단 말이당가!”

 

 사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주모가 입을 삐죽대었다. 

 

“... 그러고보니 이번에 도깨비 신부는 누가 될랑가?”

“오메! 불쌍한 내 딸년을 보았나! 천한 애비를 잘못 만나 도깨비 신부로 가버리면 이 애비는 어찌 살아가야 혀! 아기씨처럼 번듯한 양반집에서 태어났으면 이런 걱정은 하지를 않았을 텨! ”

 

 사내가 가슴을 퍽퍽 치며 울분을 토해내자, 맞은편에 앉아있던 사내가 그를 불쌍한 눈빛으로 쳐다보다 주모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보니 그 도깨비. 도깨비들은 보통 주막에 자주 온다 던디. 혹 수상한 사람을 본적이 있나?”

“수상한 사람?”

 

 주모 또한 엉엉 우는 사내를 안쓰럽게 바라보다 데구루루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고보니 있었던것 같기도 하고.”

“아니 도깨비를 봤단말여?”

“아니 내가 언제 도깨비랬나?”

 

 주모는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낮추라 손짓했다. 

 

“노오란 머리의 사내를 보았당께. 눈도 퍼런 색이었구만. 검은 초립을 쓰고 있었지만, 내 눈은 못속이지.”

“별로 특이할 것도 없어라. 이민족 새끼들 가운데 종종 머리 색이 특이한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으니께. 혹, 그 이민족 놈에게 식사를 차려 주었나?” 

 

 주모가 인상을 찌푸리며 손사래를 쳤다. 

 

“내 아무리 돈이 중헌 년이지만 이민족들에게 줄 밥과 술은 없어라.”

“근데 이민족이 아니라는 건 어찌 알았당께?”

“우리 말을 유창하게 혔어.”

“요즈음 이민족들 또한 우리말을 배우니께.”

“아니, 그것 뿐만이 아니지라.”

“그럼 무엇이당가?”

 

 주모는 눈을 가늘게 뜨고 수상한 자에 대해 생각하다가 포기한 모양인지 고개를 두어 번 가로 저었다. 

 

“내 촉이 그러했다 이 말이여.”

“에잉. 그걸 믿으란 말이여?”

“별수 있나.”

“아무튼 이번 신부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구먼. 도깨비가 얼른 마음을 고쳐 먹어 이민족들이 더이상 침입하지 않아야 두발 뻗고 편히 잘 터인디.”

“그 못되 먹은 도깨비가 잘도 그러하것슈!”

 

 버럭 소리를 지른 주모가 마침 주막으로 들어오는 손님을 발견하고 자리를 떴다. 앉아있는 두 평민중 한명은 참담했고, 또 한명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부어라 마셔라 술만 퍼부을 뿐이었다. 

  •  

 

“도깨비 신부가 정해졌다고 하던디!” 

“그 양반집 여종이라지?”

“그댁 애기씨 대신 가는 거라 하더이다.”

“어미는 시도 때도 없이 혼절을 하는데 별수 있나 노비신분에.”

 

 도깨비 신부가 정해지자마자 장안이 북적거렸다. 도깨비에게 팔려가는 신부를 위로하는 것인지, 고을 사람들의 평화를 기원하는 것인지 길가에는 붉은 홍등이 주렁주렁 달렸다. 채택되지 않은 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노비의 숙소엔 울음소리만이 가득했다. 신부는 그녀가 일하던 고을의 유일한 양반 집 마당에서 가마를 타고 이동할 셈이었다. 그 집안 시종들이 눈이 퉁퉁 불어 오른 신부를 씻기고 단장시켰다. 단장을 마친 신부가 붉은 당의 위에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린 채 시종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가마에 오르자, 대문 밖에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출발할 시간이여.”

 

 씁쓸한 목소리로 행렬의 가장 앞에 선 자가 구슬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거리는 도깨비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으로 텅 비어있었고, 신부의 어미라는 자가 뛰쳐나와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참으로 구슬프고 서글픈 혼인식이었다. 

 

“원망하지 말게.”

“계시를 어길수는 없었응께.”

 

 산짐승의 울음소리만 희미하게 들리는 깊숙한 산골짜기에 다다르자 가마가 멈추었다. 가마꾼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신부를 위로하고는 약간의 음식을 넣어주고는 사라졌다. 밤이 깊어지고, 빛 한점 없는 어두운 산속에 신부는 남겨졌다.

 

 오소소 바람소리와 피리리 구슬프게 우는 새 소리 사이로 여인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서방님, 서방님, 이리 오셔요.

인간세상에서 그대의 신부가 왔답니다.

붉은 당의를 입은 나는 재주가 많아요.

심심할 적마다 노래를 부를 게요.

외로울 적마다 춤을 춰드릴 게요.

이 한 몸 바쳐 그대를 즐겁게 해드릴게요.

 

 아무도 듣는 이 없는 신부의 노랫소리. 해가 지고 어둠이 어둑어둑해질 때 까지 신부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도깨비에게 그녀의 위치를 알리려는 것인지, 무서움을 떨쳐내려는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효과가 있는 것인지 키이익- 하는 처음 들어보는 기이한 울음소리가 가마의 근처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울음소리를 듣자, 가마 안의 신부는 노래를 멈추었다.

 

바스락 바스락 

 

 멀리서 풀 밟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필시 두 발 짐승이 걷는 소리었다. 도깨비로구나, 신부를 데리러 온게야. 크르르- 가마 근처를 맴돌던 산짐승은 자신의 먹잇감을 빼앗길 것 같은 예감에 사납게 으르렁대었다. 크악-! 달려드는 소리, 스릉, 쇠붙이 소리, 털썩, 둔탁한 것이 땅으로 쓰러지는 소리 대결은 아주 짧았다. 도깨비일까 산짐승일까. 서늘한 공기 속, 신부는 가마 밖의 낯선 기운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벌컥! 가마 문이 열렸다. 노래가사와는 다르게  형형한 눈빛을 지닌 신부가 이때다 싶게 단도를 들고 가마 문을 연 자에게 돌진했다. 

그리고는. 

 

“네놈이냐.”

 

 커다란 산짐승을 베어버린 것인지, 피가 뚝뚝흐르는 장검 두개를 든 사내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단도를 막아내자, 신부가 입안을 씹어먹을 듯이 으르렁거렸다. 신부는 오랫동안 단도를 꼭 쥐고 있었던 것인지 손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

 

 어둠속에서도 그녀는 똑똑히 보았다. 파란 눈동자와 노란 머리카락. 난생 처음 보는 자. 도깨비인가.

 

“네놈이 그 고약한 도깨비냐고 물었다.”

“... 도깨비?”

“네 이놈. 죽여버리겠다.”

“도깨비라니.”

 

 사내는 한쪽 눈썹을 기이하게 비틀어 올리며 대꾸했다. 신부는 기회를 엿보며 여러 번 단도를 들어올렸지만, 그에게 아주 쉽게 제압당했다. 

 

“...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별수 없소. 여인에게 이런 짓을 할 생각은 없었소만.”

 

 인정사정 없이 단도를 휘두르며 몸부림 치는 신부를 어찌할 방도를 모르고 피하기만 하다, 그 사내는 결국 결심을 한 것인지, 신부의 뒷통수를 가볍게 쳤고, 신부는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아 눈을 감았다. 
 

  •  

 

“으음.”

 

 신부가 눈을 떴다. 얼얼한 뒷통수를 어루만지던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작고 허름한 오두막, 아랫목은 후끈했으나, 구멍이 숭숭 뚫린 창호문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벌떡 몸을 일으키고는 당의 아래 겹겹이 입고 있었던 혼례복이 벗겨져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옷을 찾느라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예의가 없는 도깨비라도 내게 이럴 수는 없지.”

 

 그녀는 조금 분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문이 열리고 아까의 그 사내가 등장했다. 

 

“정신이 좀 돌아왔소?”

“당장 내 옷을 내어오시오.”

“그럴 수는 없소.”

 

 콧방귀를 낀 그녀가 팔짱을 끼고 그를 노려보자 사내가 그 눈초리를 받아들이며 변명을 하는 듯 대꾸했다.

 

“... 또 어디에 무기를 숨겨 놨을지 모르니. 아니면 무기를 또 숨기려던가.”

“그 단도가 내 유일한 무기었소.”

“정신을 차렸으면, 날이 밝는대로 그대의 신랑에게로 돌아가시오. 혼례길인 것 같았는데.”

 

 사내는 방 가운데에 털썩 앉아 가져온 술병과 잔을 꺼내들었다.

 

“당신이 도깨비라면 내 처지를 잘 알지 않겠는가?”

“도깨비가 아니오.”

“허면 나를 왜 데려온 것이오?”

“어두운 밤, 숲 속에서 그리 인기척을 낸것은 당신이오.”

“다른 이를 기다리고 있었소.”

“그것이 도깨비오?”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에 산짐승들에게 잡아 먹힐뻔 했소.”

 

 사내가 잔에 담긴 술을 입에 털어놓으며 벽에 기대 앉았다.

 

“그럼 잡아 먹히게 그냥 두지 그러셨소. 그러니 내 그대를 도깨비라 의심하는 것이오.”

“도깨비가 아니라니까.”

“허면, 당신은 누구요? 수상하기 짝이 없소. 청안에 금발인 사내는 내 이 고을에 태어나고 자라면서 한번도 본적이 없소이다. 그리고…”

 

 눈에 힘을 주고 반듯하게 자리를 고쳐 앉은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근방에서는 나를 모르는 사내도, 나를 이렇게 대우할 사내도 존재하지 않소.”

“...”

“지금쯤이면 고을이 난리가 났을 거요. 양반집 막내 아기씨가 도깨비 신부로 잡혀갔다고.”

“... 그놈의 도깨비는 도대체 무엇이오?”

 

 이번엔 사내가 질문했다.

 

“그 전에 당신의 정체부터 들어봅시다.”

“도깨비에 대한 정보를 주면 내 정보를 주겠소. 나도 그리 호락호락한 정체는 아니라.”

 

 여인은 입술에 반듯하게 힘을 주고 무언가 참는듯 하다 입을 열었다. 

 

“최근 국경에 이민족들의 침범이 자자하오. 수도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오는 길이 험한 지 아직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소. 원통할 따름이지.”

 

 여인은 사내의 손에 들린 술잔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사내가 눈치를 채고 술잔을 건네니 옳다구나, 하며 받아 들었다.

 

“양반집 막내 아기씨는 술꾼이었군.”

“오해요. 추위에는 이만한게 없소. 내 몸이 으슬거리는 것 같아서.”

“그렇다고 칩시다.”

“아무튼, 이민족들은 양반이고 상놈이고 물불 가리지 않고 쳐들어와 사람을 죽이기도, 데려가기도 했소. 곳간을 털고, 불을 지르고. 그들이 쳐들어올 때마다 이 작고 평화로운 마을은 부모를 잃은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 수 일째 배를 곪아 병이 든 자들의 신음으로 가득했소.”

“…”

“그리고 내 부모도 이민족들에 의해 살해당했소. 그것이 내 세 살때의 일이랬소. 나는 이민족들의 침범으로 부모의 얼굴도 기억을 못하는 불효녀가 되었소. 이후, 나는 조부와 조모의 손에 키워졌소.”

 

 여인이 씁쓸하게 손에 든 작은 잔을 비워냈다. 

 

“그러던 중 소문이 돌았소. 이 모든 일의 배후는 산 골짜기 깊숙이 사는 도깨비의 짓이라는. 외로움 몸부림 치던 도깨비가 이민족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러니, 매년 도깨비 신부를 보내 그자의 외로움을 진정시키면 이민자들은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하여도, 마을 사람들이 양반집 규수인 당신을 도깨비 신부로 책정할리는…”

“없소. 나를 그리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이 고을에 존재하지 않다고 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소. 그리하야 참 씁쓸한 결정이 났소. 김씨의 여식.”

“친우였소?”

“노비였소.”

 여인은 고개를 떨구었다. 

 

“양반집 규수이고, 여종이고, 이민족들은 그런 것을 가리지 않소. 다음 침입이 일어나면, 나 또한 잡혀갈 지도 모르오. 그래서 대신 왔소.”

“...”

“내 굳은 결심을 한 것이오. 그 외로워하는 도깨비를 죽여야 겠다고. 그럼 모든 원흉이 사라지는 것이니까.”

“그렇군.”

“그러하오.”

“귀하신 몸이었구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날이 밝으면 돌아가는 것이 좋겠소. 산아래까지 별 탈없이 내려가게 해주겠소.”

“아니, 그 전에.”

 

 여인이 들고 있던 술 잔을 내려놓고 그와 눈을 맞추었다.

 

“이제 당신 이야기를 해보시오. 도깨비가 아니라면 그대는 무엇이란 말이오? 그것을 알기 전 까지 나는 이 산을 벗어날 수가 없음이야.”

“나는…”

 

 이번엔 사내가 또 단숨에 잔을 비워냈다.

 

“나는 수도에서 왔소.”

“꼴을 보니 도망쳐온 게 분명하군. 무슨 짓을 했소? 역적이오?”

 

 그가 그녀를 쳐다보자 여인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농이오.”

“그런 살벌한 농을.”

 

 여인이 다시 한 번 웃음을 터트렸다. 

 

“그저 살길을 도모하기 위해 정체없이 걸으니 이곳, 국경이더이다.”

“거짓이군.”

“거짓이오.”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부드러운 웃음이 나타났다 지워졌다.

 

“무사였소.”

“그리 보이오. 검이 두 자루였던 것을 내 기억하고 있소.”

“... 그저 버림받고 도망쳐온 것이오.”

“그렇다면 한 자루는 훔쳐온 것이구려.”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씁쓸하게 웃으며 또 한번 잔을 비워냈다. 버림받은 것은 그가 아니라 그의 주군이시지만. 그는 권력에는 뜻이 없었다. 그의 군주께서 그를 아끼실 때마다 조여오는 목. 그것들이 그에게는 큰 위협은 되지 않았지만, 그의 군주에게는 위협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밤, 그는 몰래 수도를 떠났다. 누군가는 무책임하다 할 수 있겠지만, 그의 군주를 지키기 위해 그가 생각한 것은 그것 뿐. 이제는 소리 소문없이 살 생각이었다. 

 

“반갑소.”

 

 뺨이 조금 붉어진 여인이 그의 생각을 비집고 들어왔다. 

 

“무인이었구려.”

“그렇소.”

“그래도 내 조금의 의심은 지니고 있겠소.”

“그리하던가.”

 

 여인이 웃었다. 

 사내는 그녀에게 돌아가라 여러 번을 타일렀지만, 그녀는 도깨비를 만나든 이민족을 만나든 사단을 내기 전에는 어디에도 가지 않겠다고 했다. 한밤 중 그녀를 양반 댁 대문 앞에 몰래 두고 오는 것도 의심을 살 일이라 사내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내게 무술을 가르쳐 주시오.”

 

 다음날 그녀가 그에게 제안했다. 그는 망설였지만, 기본기도 없이 도깨비를 무찌르겠다는 사명으로 도깨비 신부가 된 그녀가 또 어떤 일을 벌일 지 몰라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쓸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도망쳐온 입장에서 신분이 발각되거나, 그럴 위협이 있다면 무시를 해야하는데, 왜 자꾸 무모한 짓을 하려는 저 여인이 거슬리는지 사내는 그 이유를 알지를 못했다.

 

“그나저나 내 검술 스승이 될 분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소. 이름이 무엇이오?”

“…장랑.”

 

 이러한 것들도. 도망치는 그에게는 알려줄 명분이 없었던 것인데.

 

“장랑? 특이한 이름이구려. 늑대의 인솔자라…”

“… 궁금증은 이제 다 해소된거요?”

“좋은 이름이구려.”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양반댁 규수이던 그녀는 이제 그의 헐렁한 무복을 고쳐 입고 들판을 나다니며 그가 어딘가에서 구해온 목검을 휘둘렀다.

 

“이리 하면 되겠소? 도깨비를 한번에 죽여버릴 수 있느냐, 이말이오.”

“내 도깨비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그녀가 칼을 한번 더 휘두르자, 작은 나뭇가지들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아직 작은 산짐승도 죽이지 못하면서 동작만이 요란했다. 도도하고, 반듯했던 양반댁 규수는 이제 찬 바람에 발그래해진 두 뺨으로 생글생글 웃었다. 

 

“크기가 어마어마한 산짐승들을 단칼에 베어버린 정도의 스승을 가졌으니, 가능성이 있지 않겠소?”

“... 연습이나 하시오.”

 

 사실 도깨비란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온갖 정보가 흘러 드는 수도에서, 그리고 수백 번 산골짜기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그는 어떠한 수상한 자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저 이민족들이 그들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고립된 국경 마을을 침범하는 것일 뿐. 나약한 사람들이 탓할 대상을 만들어 낸 것 뿐. 

 

“도깨비가 아니라면, 이민족들 한 두 어명 쯤은 물리칠 수 있을 게야. 내가 배움이 빠르거든.”

 

 그녀가 반짝이는 눈동자로 중얼거렸다. 

 

“아녀자의 몸으로 위험한 생각을 하는군.”

“아녀자는 고을을 위해 희생할 수 없단 말이오? 신부를 채택하는 것 부터가 희생이었소.”

“...”

“생각해보니 도깨비도 여성일지 모르오. 그렇다면 신랑이 필요하겠군.”

“그때는 나 대신 당신이 희생하겠소?”

 

 그녀가 그에게 칼을 내밀며 밀었다. 

 

“... 기꺼이 그러지.”

 

 그가 작게 대답했지만. 그것은 바람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그녀는 눈썹을 올리며 그에게 다시 한 번 대답을 요구했지만, 그가 침묵하자 어깨를 들썩였다. 아마도 그의 대답이 거절이라고 확신한 것 같았다. 

 

“그대는 겁쟁이로군.”

“그렇소.”

 

 그가 등을 돌려 그들의 작고 허름한 오두막으로 돌아가자, 그녀도 그의 뒤를 따랐다. 

  •  

 

 끼이익- 끼이익- 

 

 그의 머리 위로 검은 매가 날아들었다. 그는 한 팔을 들어 매를 잡아낸 뒤 다리에 묶여져 있는 전보를 받아 들었다. 


 


  •  

 돌아오라. 

 발신인과 수신인이 없는 간단한 한 문장. 하지만 그는 그것을 누가 보냈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세상에 내보일 생각이 없었다. 그는 오두막 앞에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에 그 서신을 불태워버렸다. 

 

 평생을 숨어 살 작정이었다. 제 이름이 세상에 나온다면 그의 주군이 또 어떠한 위협을 받게 될지 몰라서.
 

  •  

 

 그들이 만났던 안식의 계절의 끝자락이 지나고, 물의 계절, 불의 계절이 지났다. 그 동안 그녀는 해가 떠있는 낮에는 그에게서 검술을 배우고, 해가 지면 그가 어디선가 잡아온 작은 산짐승을 구워먹으며 도깨비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처음에 불쌍하다며 기겁을 하던 그녀는 이제 모닥불 앞에서 그가 자신의 몫을 덜어줄 때 까지 얌전하게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종종 그가 가져온 주병에 담긴 술을 나눠 마시고, 시시콜콜한 수도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녀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였다. 곱디 고왔던 그녀의 손은 굳은살이 박히고, 비단 같았던 머리카락은 한데로 틀어 올려져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렸다.

 

“그대가 없었다면 내 평생 예쁜 방안에 갇혀 수나 놓으며 살아갔을 거요.”

“그 편이 나았을 지도 모르오.”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지금이 더 사람같이 사는 것 같소.”

“도깨비를 잡는 것이?”

“내 세상에 대한 목표가 생긴 것이.”

 

 알딸딸한 표정으로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모닥불 앞에서 그녀가 그에게 진심으로 말했다.

 

“고맙소. 그대가 아니었으면 부모의 원수도, 내 삶의 목표도 없이 방안에 앉아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할 날만 기다리고 있는 양반집 규수로 살았을 거요.”

“죽음이라는 말이 그대 입에서 참 쉽게 나오는 군.”

“국경 마을에 산다는 것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소.”

“…”

“어떠오. 조금은 무인같았소?”

 

 그녀가 푸흐흐 웃으며 내가 꽤 무인같은 말을 한 거요, 중얼거리고는 또 푸흐흐 웃었다.

사내는 그 모습은 지긋이 바라보다 주병에 담긴 술을 통채로 들이켰다.

 

  •  

 

 바람의 계절의 초입. 마을에는 또 다시 이민족들이 쳐들어왔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베고, 불을 지르고, 식량과 아녀자들을 훔쳐 달아났다. 마을은 난장판이 되었고, 사람들은 도깨비가 또 일을 저질렀다며 울분을 토해냈다. 

 

 주기적으로 마을을 주시하고 있던 사내는 이 소식을 여인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 소문을 듣는다면 당장이라도 위협을 무릅쓰고 그의 곁을 떠나 마을로 내려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녁거리를 사냥하고 돌아온 그는 텅 비어버린 오두막을 발견했다. 그는 문을 열어보고 그녀의 소지품들이 난장판으로 벌려져 있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가지고 있었던 것을 내팽개치고 산 아래로 달렸다.

 

 얼마 못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 장랑.”

 

 여인은 처량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 내… 검술을 연습하다, 이상한 소리가 나서 확인 차, 산 정상에 올랐는데… 마, 마을에 불이…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소.”

 

 그녀가 비틀거리자, 그가 부축을 해주었다.

 

“… 이민족들이… 또 쳐들어 온 것이… 분명함이야.”

“아닐 거요.”

“…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소.”

“내가 갔다오지.”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내 조부와… 조모와… 식솔들의 안전을 확인해야 겠소.”

“돌아갑시다.”

 

 그녀가 또 한번 고개를 저었다.

 

“… 이리 내려간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소.”

 

 그의 말에 그녀가 떨리는 눈동자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민족들이 쳐들어온 것을 그대는 알고 있었음이야.”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에 순간 분노감이 스쳤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검술을 연마 했는 지 그대는 알고 있었으면서.”

“…”

“마을의 소식을 거짓으로 내게 고한 거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혼란스러운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거짓을 고했을까, 당신에게. 왜 나는 그대를 내 세상에 가두려고 이토록 노력하고 있을까. 평생을 불안하고 고독했던 마음이 최근에는 만족스러움과 행복감. 그래, 그는 행복함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그녀가 그의 곁에 머물기 시작하며 생겼던 것임을 그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왜 내게 거짓을 말했냐 묻지 않소!”

“사실을 말하면.”

“왜!”

“그럼 그대는 당장이라도 마을으로 내려갔을 거요.”

 

 그녀는 그들의 첫 만남으로 돌아간 듯 발버둥을 치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것이 그대에게 무슨 상관이라고!”

“상관이 있소, 이젠.”

“이것 놓으시오! 내 마을을 지키려는 것이잖소! 내 그대가 이리 막는다면 찢어 죽여서라도 내려갈 참이오!”

“그리 해보시오. 그대가 이제껏 배운 것은 보호술이오. 공격술이 아니라 무리일 거요.”

“내가 못할 것 같소? 놓으시오! 놓으란 말이야!”

 

 그녀는 그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분에 찬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그에게 두 손목을 포박당한 채 몇 번 더 발버둥을 치다 체력적으로 그를 이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의 품에 축 쳐져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 이건 도깨비의 짓이오. 그 죽일 놈의 도깨비가 신부를 제대로 맞이하지 않았기 때문이오.”

“... 아닐 거요.”

“고분고분 희생이 되었다면 좋았을 것을. 도깨비에게 잡혀가서 무슨 짓을 당하던 그자의 외로움만 달래 주었다면… 내 무지한 선택 속에 마을 사람들이…”

“… 그것도 아닐거요.”

“그대가 도깨비의 신부를 납치해갔으니까 벌어진 일이니 나를 이만 가게 두시오.”

“말은 똑바로 하지. 내가 그날 당신을 구한 거요.”

 

 그녀는 붉어진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무뚝뚝한 얼굴로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자, 후우- 후우- 심호흡을 몇 번 하던 그녀가 진정이 좀 되었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거렸다. 

 

“그대의 탓을 할 수는 없지. 모든 것은 내가 시작했으니까.”

“...”

“마을로 내려가지 못한다면, 내일이라도 난 도깨비를 찾아가야겠소. 공격술이든 보호술이든 상관 없소. 그저 잡혀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당신이 가져간 혼례복을 돌려 주시오. 내 신부로서 구색을 갖추어야 하니.”

“... 싫소.”

“다 싫다고만 하지 마시오. 내 지금이라도 내 이 사태를 바로잡으려고 하오.”

“... 그대가 도깨비를 만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오.”

 

 그녀가 아직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하도 울어 코끝이 헐어 있는 그녀. 생기 없이 텅 비어버린 눈동자로 그에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그리고 그 말에 그는 울컥, 감정이 올라왔다.

 

“그런 표정으로 본다고 해도, 난 당신을 막을거니 소용 없소.”

“제발 돌려 주시오.”

 

 그렇게 다 포기한 사람의 모양을 하고 빌어 봤자. 

 

“… 소용 없소.”

“내가 그르친 일이오. 돌이킬 수 있게 해주시오.”

 

 서러움 가득한 표정으로 빌어 봤자. 

 

“제발, 내가 대의를 위해 희생할 수 있게 해주시오.”

“... 정녕 당신이 생각한 방법이 그것뿐인 거요?”

 

 결국 그가 화를 내며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녀자로서 할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소. 이 아둔한 머리로 무엇을 할수 있겠냐 말이야.”

“...”

“내 평생을 작고 예쁜 방에 갇혀 수나 놓으며 살았소.”

“계속 그렇게 살 순 없었던 거요?”

 

 그녀가 이번엔 고개를 저었다. 

 

“다른 이들은 지아비를 잃거나 아내를 잃고, 부모를 잃은 채로 고통스러워 하는데 내가 아무리 수를 예쁘게 논들 하여 그들의 슬픔이, 그들의 고통이 지워지겠소? 내 부모가 돌아오겠소?”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고, 당신이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오.”

 

 그녀가 또 한번 고개를 저었다. 

 

“나는 고운 옷을 입고 그저 내 사람과 내 땅이 빼앗기는 것을 기다리긴 싫었던 거요. 이제 내 조부모가 내 식솔들이 빼앗길 차례인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

“...”

“그것이 양반으로서의 도리이자, 내 희생의 명분이오.”

“...”

“설명이 되었으니 이제 부디 나를 놓아 주시오.”

“이민족들을 물리치기만 한다면 그대의 삶이 좀 평화로워지는 거요?”

 

 사내가 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도깨비가 된다면...”

“그대가 도깨비가 아니라는 것은 내 진즉 알고 있소. 되고 싶다고 되는게 아니라는 것도.”

“처음에 품었던 그 조그만 의심을 조금 더 키워 보시오.”

 

 그녀가 그와 눈을 맞추며 아주 슬픈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처음에 품었던 그 조그만 의심, 사라진 지 오래요. 아마도 처음 잔을 부딪히던 그날부터.”

“...”

“그리고 그대는 나서지 마시오.”

“아니.”

“낮게 나는 검은 매, 그것의 다리에 묶여있는 전보. 누군가 당신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는 말이지. 뚫린 창호지 사이로 나는 다 봤소.”

“... 그것을 진즉 고쳤어야 했는데.”

“당신은 매번 그것을 불태워버리고, 어둠 속으로 숨어버리잖소. 그것이 당신에게 중한 일이라는 것을 내 진즉에 알고있소.”

“...”

“당신은 세상을 피해 숨어있는 중이잖소. 그 어떤 이유이던지 간에.”

 

 바람이 불었다. 여인의 검고, 사내의 노란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서글픈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전해져 왔다. 

 

“내 그대의 친우로서, 또 제자로서, 짧지만 않았던 시간 동안 그대의 곁에 머물던 여인으로서 하는 말이오.”

“...”

“그대는 그대의 세상을 지키시오. 세상을 위해 희생할 사람은 한 명으로도 충분하오.”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 잡혀있는 팔에 힘을 풀었다. 툭, 하고 그녀의 양 손이 처량하게 떨어져 허벅지에 부딪혔다. 그에게서 뒤를 돌아 터벅터벅 오두막으로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뒷모습이 참으로 서글프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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